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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불평등 심화에 재정역할론 확산
최하위층 소득 84만원으로 악화
1인가구 포함땐 감소폭 더 커져
복지정책은 극빈층·노령층 초점
임시·일용직 실업급여도 못받아
“소득향상 위해선 재정 확대해야”
14년 전 사업에 실패한 뒤 건설현장 일용직을 전전해온 김석철(가명·55)씨. 김씨는 지난달 공공 자활근로로 68만원을 벌었다. 공공 자활근로는 1년 중 6개월, 한 달에 15일씩만 일할 수 있다. 그는 “아마도 예산 부족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어차피 자활근로만으로는 저축 한 푼 할 수 없는데다 안정적이지도 않아서, 김씨는 다른 곳으로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연금 수급 자격이 되는 가입기간 10년을 채우는 것이 목푭니다. 아파트 관리 일을 해보려고 지원했다가 몇번 퇴짜를 맞았는데, 에너지관리 기능사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하기가) 좀 낫다고 하네요.” 김씨는 “노후만큼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에너지관리 기능사 교재를 늘 지니고 다니며 틈틈이 들여다본다고 했다.
김씨는 우리 사회에서 소득 하위 10% 가구에 속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1분기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보면, 소득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84만1203원으로 한해 전 95만8571원보다 12.2% 감소했다. 이는 2014년(1분기 기준)보다도 후퇴한 수준이다. 저소득 가구의 소득 감소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른바 ‘84만원 인생’을 살고 있는 김씨는 ‘저소득층 탈출’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 복지정책의 울타리에선 비켜나 있다. 안정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아온 탓에 일감이 끊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를 탄 적도 거의 없다. 그렇다고 극빈층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상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는 대상(수급기준 월소득 약 50만원)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해 근로장려금(EITC·근로빈곤층에 대한 소득지원제도)을 받긴 했지만, 김씨의 손에 들어온 돈은 월 몇만원(연간 20만~30만원) 수준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출범 이후 경제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내세우며 소득주도성장을 핵심 경제정책 과제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과 주거비·통신비 등 생계비 부담 완화, 사회안전망 확충에 따른 취약가구의 적정소득 보장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최저임금 인상에 정책이 집중되면서 다른 세부과제를 추진하는 데서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올해 1분기에 저소득 가구 소득이 급감하고 소득 불평등도가 심화되면서 정부가 좀더 종합적인 정책 추진에 나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재정의 구실이 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맥락이다.
18일 <한겨레>가 입수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내부 분석 보고서(최근 소득분배 변화의 현황과 특징)를 보면, 김씨와 같은 1인가구를 포함할 경우 저소득 가구의 소득 감소와 소득분배 악화 정도가 훨씬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통계청이 공개한 가계동향조사 결과는 전국 2인 이상 가구만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보사연의 이번 보고서는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처지인 1인가구를 분석에 포함시켰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소득 하위 20% 가구의 근로·사업소득은 한해 전보다 14.5% 급감했다. 특히 65살 이상 노인을 뺀 비노인가구 기준으로도 근로·사업소득은 10.9%나 줄었다. 이에 따라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소득 5분위 배율(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상위 20%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값)도 2인 이상 가구로 볼 때는 5.95배였지만, 1인가구를 포함시킨 이번 보고서에선 6.9배까지 악화됐다. 1인가구가 더해지면서 저소득 가구의 소득 감소가 더 큰 폭으로 나타난 결과다.
신성훈(가명·53)씨도 10여년간 임시·일용직을 전전하다 지난해 말에야 법원으로부터 개인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져 긴 시간 발목을 잡아온 채무를 정리했다. 그가 본격적인 구직활동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그때부터다. 최근 신씨는 보안업체 경비직 등에 취업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씨는 “젊어 보이려고 염색까지 했다. 한 면접장에서 10년 넘는 공백 기간에 무슨 일을 했냐는 질문을 받고 한참을 우물쭈물했다. 뒤늦게 공공근로와 건설 일을 했다고 말하는데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씨가 언제까지 구직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고용보험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난한 실업자의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는 없다. 기존 실업급여(구직급여)는 보험료를 많이 낸 사람이 많이 받는 ‘기여의 원리’로 작동하기에, 임시·일용직은 일자리를 잃고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수혜 대상에서 빠지기 일쑤다. 이 때문에 그는 오로지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둔 돈에 의지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다. “돈이 떨어지면 월세 30만원을 내기 위해 급한 대로 다시 단기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일자리 찾기가 또 늦춰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저소득 가구의 소득 감소는 임시·일용직 소득이 급감하고 무직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경기가 나빠지면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탓인데, 그렇다고 정부가 이들의 소득을 보충해주지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소득 재분배 정책이 과거보다는 두터워지고 있지만 고령층과 극빈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저소득 가구가 폭넓게 소득보장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존 복지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집단이 어디인지를 살핀 뒤 이를 어떻게 보완할지 등을 고민해 소득보장 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20여년 동안 기초연금 등 각종 복지제도가 노후 소득을 어느 정도 지원해온 것은 재정의 적극적 구실이 중요하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을 보면, 고령 빈곤가구(60살 이상 1인가구)의 월평균 ‘재분배 소득’(복지급여에서 세금·사회보험료를 뺀 금액)은 1996년 -4만7099원에서 2016년 35만2361원까지 늘어났다. 반면 각종 복지정책의 주요 대상에서 벗어나 있던 60살 미만 1인 빈곤가구의 재분배 소득은 1996년 -2만8022원에서 2016년 -14만4315원으로 오히려 악화됐다.
김씨와 신씨가 이대로 노후를 맞게 되면 빈곤의 수렁에서 벗어나기가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2016년 기준 4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고 수준이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복지·자영업·공정거래 정책들이 서로 발맞춰 함께 추진돼야 하는데 최저임금 인상 외에 다른 분야에서는 별다른 힘을 얻지 못했다”며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더 과감한 복지 지출, 확장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준호 정은주 허승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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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위층 소득 84만원으로 악화
1인가구 포함땐 감소폭 더 커져
복지정책은 극빈층·노령층 초점
임시·일용직 실업급여도 못받아
“소득향상 위해선 재정 확대해야”
14년 전 사업에 실패한 뒤 건설현장 일용직을 전전해온 김석철(가명·55)씨. 김씨는 지난달 공공 자활근로로 68만원을 벌었다. 공공 자활근로는 1년 중 6개월, 한 달에 15일씩만 일할 수 있다. 그는 “아마도 예산 부족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어차피 자활근로만으로는 저축 한 푼 할 수 없는데다 안정적이지도 않아서, 김씨는 다른 곳으로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국민연금 수급 자격이 되는 가입기간 10년을 채우는 것이 목푭니다. 아파트 관리 일을 해보려고 지원했다가 몇번 퇴짜를 맞았는데, 에너지관리 기능사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하기가) 좀 낫다고 하네요.” 김씨는 “노후만큼은 사람답게 살기 위해” 에너지관리 기능사 교재를 늘 지니고 다니며 틈틈이 들여다본다고 했다.
김씨는 원래 정수기 대리점과 호프집 등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었다. 하지만 2004년 사업에 실패한 뒤로는 일용직으로 건설현장 등을 옮겨 다니며 일해왔다. 이혼을 하면서 집을 떠나온 뒤로는 서울 대림동과 신림동 일대 고시원을 떠돌며 살았다. “달랑 가방 하나랑 저, 그리고 빚뿐이었습니다. 술에 의존하는 날들이 많아졌고, 돈이 필요하면 노가다를 뛰는 삶이 길어졌습니다.” 4년 전부터 김씨는 개인파산 신청으로 빚을 면책받고 사회복지단체 소개로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했다. 나름대로 ‘안정적인 삶’으로 진입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고 했다. 한두살 나이가 들수록 일자리를 새로 얻는 게 쉽지 않은 탓이다. 그는 “지금은 돈이 급할 때 건설현장이라도 나갈 수 있지만, 이 일도 얼마 안 남았다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씨는 우리 사회에서 소득 하위 10% 가구에 속한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올해 1분기 가계동향조사 자료를 보면, 소득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84만1203원으로 한해 전 95만8571원보다 12.2% 감소했다. 이는 2014년(1분기 기준)보다도 후퇴한 수준이다. 저소득 가구의 소득 감소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른바 ‘84만원 인생’을 살고 있는 김씨는 ‘저소득층 탈출’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정작 정부 복지정책의 울타리에선 비켜나 있다. 안정적으로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아온 탓에 일감이 끊겼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를 탄 적도 거의 없다. 그렇다고 극빈층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상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는 대상(수급기준 월소득 약 50만원)에도 포함되지 않는다. 지난해 근로장려금(EITC·근로빈곤층에 대한 소득지원제도)을 받긴 했지만, 김씨의 손에 들어온 돈은 월 몇만원(연간 20만~30만원) 수준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출범 이후 경제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내세우며 소득주도성장을 핵심 경제정책 과제로 내세웠다. 이를 위해 최저임금 인상과 주거비·통신비 등 생계비 부담 완화, 사회안전망 확충에 따른 취약가구의 적정소득 보장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최저임금 인상에 정책이 집중되면서 다른 세부과제를 추진하는 데서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올해 1분기에 저소득 가구 소득이 급감하고 소득 불평등도가 심화되면서 정부가 좀더 종합적인 정책 추진에 나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재정의 구실이 커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맥락이다.
18일 <한겨레>가 입수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내부 분석 보고서(최근 소득분배 변화의 현황과 특징)를 보면, 김씨와 같은 1인가구를 포함할 경우 저소득 가구의 소득 감소와 소득분배 악화 정도가 훨씬 더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통계청이 공개한 가계동향조사 결과는 전국 2인 이상 가구만을 대상으로 한 것인데, 보사연의 이번 보고서는 상대적으로 더 열악한 처지인 1인가구를 분석에 포함시켰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에 소득 하위 20% 가구의 근로·사업소득은 한해 전보다 14.5% 급감했다. 특히 65살 이상 노인을 뺀 비노인가구 기준으로도 근로·사업소득은 10.9%나 줄었다. 이에 따라 소득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소득 5분위 배율(균등화 처분가능소득 기준·상위 20% 소득을 하위 20% 소득으로 나눈 값)도 2인 이상 가구로 볼 때는 5.95배였지만, 1인가구를 포함시킨 이번 보고서에선 6.9배까지 악화됐다. 1인가구가 더해지면서 저소득 가구의 소득 감소가 더 큰 폭으로 나타난 결과다.
신성훈(가명·53)씨도 10여년간 임시·일용직을 전전하다 지난해 말에야 법원으로부터 개인파산 신청이 받아들여져 긴 시간 발목을 잡아온 채무를 정리했다. 그가 본격적인 구직활동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그때부터다. 최근 신씨는 보안업체 경비직 등에 취업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씨는 “젊어 보이려고 염색까지 했다. 한 면접장에서 10년 넘는 공백 기간에 무슨 일을 했냐는 질문을 받고 한참을 우물쭈물했다. 뒤늦게 공공근로와 건설 일을 했다고 말하는데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씨가 언제까지 구직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고용보험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가난한 실업자의 소득을 지원하는 제도는 없다. 기존 실업급여(구직급여)는 보험료를 많이 낸 사람이 많이 받는 ‘기여의 원리’로 작동하기에, 임시·일용직은 일자리를 잃고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수혜 대상에서 빠지기 일쑤다. 이 때문에 그는 오로지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모아둔 돈에 의지해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있다. “돈이 떨어지면 월세 30만원을 내기 위해 급한 대로 다시 단기 일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일자리 찾기가 또 늦춰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저소득 가구의 소득 감소는 임시·일용직 소득이 급감하고 무직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경기가 나빠지면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탓인데, 그렇다고 정부가 이들의 소득을 보충해주지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소득 재분배 정책이 과거보다는 두터워지고 있지만 고령층과 극빈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저소득 가구가 폭넓게 소득보장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강신욱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존 복지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집단이 어디인지를 살핀 뒤 이를 어떻게 보완할지 등을 고민해 소득보장 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20여년 동안 기초연금 등 각종 복지제도가 노후 소득을 어느 정도 지원해온 것은 재정의 적극적 구실이 중요하다는 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분석을 보면, 고령 빈곤가구(60살 이상 1인가구)의 월평균 ‘재분배 소득’(복지급여에서 세금·사회보험료를 뺀 금액)은 1996년 -4만7099원에서 2016년 35만2361원까지 늘어났다. 반면 각종 복지정책의 주요 대상에서 벗어나 있던 60살 미만 1인 빈곤가구의 재분배 소득은 1996년 -2만8022원에서 2016년 -14만4315원으로 오히려 악화됐다.
김씨와 신씨가 이대로 노후를 맞게 되면 빈곤의 수렁에서 벗어나기가 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2016년 기준 46.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고 수준이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소득주도성장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복지·자영업·공정거래 정책들이 서로 발맞춰 함께 추진돼야 하는데 최저임금 인상 외에 다른 분야에서는 별다른 힘을 얻지 못했다”며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더 과감한 복지 지출, 확장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준호 정은주 허승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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