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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애프터 어스’에서 주인공 사이퍼와 그의 아들 키타이는 우주정찰 임무를 띠고 가던중 외계 행성에 불시착한다. 알고 보니 이 행성은 환경오염으로 파괴된 지구였다. 지구의 모든 동식물은 오염의 주범인 인간을 공격하도록 진화돼 있었다. [사진 영화 캡처]
“Danger is real, but fear is choice.”
먼 미래, 우주비행사인 사이퍼와 어린 아들 키타이는 특수임무를 띠고 다른 행성으로 이동 중 불시착합니다. 우주선은 두 동강이 나 추락하고 사이퍼는 두 다리를 다칩니다. 남은 희망은 키타이가 수십㎞ 떨어진 우주선의 다른 기체에서 조난신호기를 찾아오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이 행성은 온갖 맹수와 식인 식물로 가득합니다. 신호기를 찾아가는 여정에서 키타이는 매 순간 생사의 기로에 놓입니다. 공포에 떠는 아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것은 아버지입니다. “위험은 현실이지만 두려움은 선택이야. 현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선택은 네 결정에 달렸어.” 키타이는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신호기를 찾아 무사히 구조됩니다.
2013년 개봉한 SF영화 ‘애프터 어스’의 줄거립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주인공이 불시착한 행성이 다름 아닌 지구였다는 점입니다. 극심한 환경오염으로 지구는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가까이 살아남은 인류는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합니다. 반면 지구의 모든 생명체는 오염의 주범이었던 인간을 공격하도록 진화했죠.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제3 인류’란 작품에서 지구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묘사합니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이 지구에 상처를 남기고, 그에 대한 경고로 지진과 해일 같은 자연재해가 일어난다는 거죠. 인간의 과도한 욕망과 그로 인한 환경오염은 지구에겐 하나의 질병이었던 셈입니다. 영화 ‘애프터 어스’도 지구가 자정작용을 위해 인간을 내쫓았다는 설정이죠.
실제로 지구 45억년 역사상 이렇게 빨리 환경을 오염시킨 것은 인간밖에 없습니다. 태평양 한 가운데엔 쓰레기가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섬(Great Pacific Garbage Patch)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버려진 쓰레기들이 해류를 타고 모인 거죠. 현재 면적은 70만㎡로 한반도(22만㎡)의 3.2배에 달합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캔, 비닐 등이 쌓인다면 머지않아 ‘쓰레기 대륙’이 생길 겁니다.
인류가 지구의 질병?
태평양 한 가운데에는 해류를 타고 온 플라스틱 등이 쌓여 만들어진 쓰레기 섬이 있다. [사진 그린피스]
세계자연기금(WWF)은 매년 ‘생태환경 초과일(Earth Overshoot Day)’을 선포하는데 이는 1년간 지구가 제공하는 생태자원을 모두 써버린 날짜를 뜻합니다. 생태자원엔 식량과 에너지원, 물과 공기뿐 아니라 자정능력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1970년 12월31일이었던 생태환경 초과일은 올해는 8월1일이었고 앞으론 더욱 빠른 속도로 날짜가 앞당겨질 겁니다. 이날 이후 쓰는 자원은 미래에 사용해야할 것을 미리 당겨쓰는 것과 같습니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석기시대 인간 1명이 음식과 주거 등을 위해 쓰는 모든 에너지의 총량은 4000칼로리였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22만8000칼로리를 사용합니다. 자동차와 TV·스마트폰 등 과거에 없던 에너지 소비처가 늘었기 때문이죠. 이는 인간 1명이 이전보다 지구의 자원을 57배나 많이 쓰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이 인간의 개체 수는 2500년 전과 비교해 80배가 늘었고요. 산술적으로만 따져도 우리가 쓰는 에너지의 양은 과거의 4560배나 됩니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은 다른 생물 종까지 사라지게 만듭니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1970년대 이후 척추동물은 종별로 평균 58%씩 감소했습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생물의 다양성은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결국 인간의 삶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결국 인간 스스로 멸종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 때문에 생전의 고 스티븐 호킹 박사는 길게는 100년, 짧게는 30년 안에 지구를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극심한 환경오염으로 인간은 지구에 더 이상 살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이유였죠. 영화 ‘애프터 어스’처럼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만들어 다른 행성으로 가야할 날이 곧 다가올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멸종의 첫 신호는 지구온난화
지금까지 지구 역사엔 5번의 대멸종이 있었습니다. 가장 심각했던 3번째 대멸종(2억5000만 년 전)에선 전체 생명의 95%가, 6500만 년 전 5번째 대멸종에선 당시 지구의 주인이던 공룡이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지질학자들은 이미 우리가 6번째 대멸종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말합니다.
가장 큰 원인은 지구온난화입니다. 온실가스 배출이 늘면서 지구의 기온이 계속 높아지고 있죠. 현재 지구의 온도는 19세기에 비해 약 1도가량 높습니다. 지금보다 기온이 1.6 더 오르면 지구 생명체의 18%가 멸종하고, 3.5도 오르면 해수면 높이가 7m 상승합니다. 6도 이상 오르면 대멸종이 완성돼 인류는 멸종한다는 전망입니다.
그런데 이런 온난화의 주범은 공장에서 내뿜는 매연만 있는 게 아닙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식용 동물(닭·돼지·소·양)이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한 해 7기가t이 넘습니다. 전체 온실가스의 14%로 전 세계의 자동차가 뿜어내는 것과 비슷한 양입니다. 특히 가축이 트림이나 방귀로 배출하는 메탄(3기가t)은 전체 배출량의 44%에 달하죠. 메탄은 열을 가두는 능력이 이산화탄소보다 28배나 높기 때문에 매우 치명적입니다.
현재 전 세계의 닭은 약 600억 마리, 소는 13억 마리, 돼지와 양도 각각 10억 마리가 있는데 앞으로 더욱 늘어날 거라고 합니다. 세계식량기구(FAO)는 전 세계 육류 소비량이 2050년엔 현재보다 70%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죠. 인간이 가축의 양을 급격히 늘릴수록 온실효과는 더욱 커질 겁니다.
그렇다 보니 일부 지질학자들은 현 시대의 대표 화석이 닭뼈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얀 잘라시비치 영국 레스터대 교수는 “중생대 공룡이 그랬듯 먼 미래엔 현재의 ‘인류세’를 인간이 아닌 닭의 시대로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아울러 ‘인류세’의 또 다른 특징으로 퇴적층 깊이 쌓여 썩지 않은 플라스틱과 알루미늄 캔도 한 몫 할 겁니다.
이미 6번째 대멸종이 시작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애프터 어스’에서 나온 말(Danger is real, but fear is choice)을 조금 변형해보면 현재의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는 현실이지만, 멸종을 앞당길지 또는 이를 막을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국가적 차원의 거시적 대책도 필요하겠지만, 일회용품과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는 것과 같은 우리의 작은 선택들이 모이면 미래를 바꿔나가는 밑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자손들의 몫입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원문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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