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 본 인공지능 기계의 습격…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지난 17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의 삼성전자 미주 법인. 점심시간을 맞아 쏟아져 나오는 직원들 사이를 1m 높이의 흰색 로봇이 종횡무진 누비고 있었다. 이 로봇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나이트스코프(knightscope)'가 개발한 경비 로봇 'K5'이다. K5는 카메라로 촬영한 주변 영상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실시간으로 관제실에 전송한다. 야간에는 적외선 카메라로 육안으로 식별이 힘든 움직임까지 잡아내고 분당 1500개의 자동차 번호판을 식별해낸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K5를 도입해 건물 외곽 경비에 활용하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주차된 차량에서 기름이 새는 것까지 잡아낼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 인간 경비원과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트스코프'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미국 전역의 쇼핑몰, 스포츠 경기장 등에 100대 이상의 K5를 판매했다. K5의 시간당 운영 비용은 7달러로 전문 경비원(25달러)의 4분의 1 정도다.
미국 로봇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최근 "로봇 개 '스폿 미니'를 내년 하반기부터 경비용으로 판매하겠다"고 밝혔다. 스폿 미니는 네 다리로 계단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것은 물론 입을 이용해 문을 열고 닫으면서 건물 구석구석을 감시한다. 회사 측은 "건설 현장을 순찰하거나 야간 순찰하는 데 최적화된 로봇"이라고 했다.
◇보안·캐셔 대체하기 시작한 로봇
24시간 경비가 가능한 데다 지치지도 않는 'K5'와 '스폿 미니'의 등장에 긴장하는 것은 도둑뿐이 아니다. IT(정보기술) 전문 매체 리코드는 "미국에서만 110만명에 이르는 건물 경비원들이 로봇의 등장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지난달 기계와 로봇, AI 기술로 발달로 인해 2025년에는 전체 일자리의 52%를 로봇이 대체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미국 레드랜즈대 연구팀도 "캘리포니아 내 일자리의 63%는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며 "이런 현상은 마트 계산원, 사무원, 청소 직원 같은 저임금 직업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로봇과 인공지능(AI)이 확산되고 있다. ①미국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에 내년 초 보급될 경비·청소 로봇 . ②샌프란시스코 시내에 문을 연 무인(無人) 상점 스탠더드 마켓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식별하는 AI 화면. ③로봇 기업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경비용 로봇은 직접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내린다. ④애리조나주 피닉스 일대에서 이달 초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 구글 웨이모의 무인 택시. ⑤실리콘밸리 삼성전자 사옥 외곽 경비를 맡고 있는 K5 로봇. /월마트·보스턴다이내믹스·웨이모·박건형 특파원
샌프란시스코 중심가에서는 계산원이 없는 완벽한 무인(無人) 상점 '스탠더드 마켓'이 시범 운영되고 있다. 스타트업 '스탠더드 코그니션'이 운영하는 이 식료품점에서 점원이 하는 것은 물건을 진열대에 채우는 것뿐이다. 지난 14일 스탠더드 마켓을 직접 찾아가 봤다. 사전에 신용카드를 등록한 앱(응용 프로그램)을 켜고 상점 안에 들어선 뒤 제품을 들고 나오자, 구매 영수증이 스마트폰으로 전송됐다. 지난해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이 선보인 무인점포 '아마존 고(Amazon Go)'에는 수백 개의 센서와 100여 대의 카메라가 설치되고 지하철 개찰구 같은 출입문이 있지만, 이 상점은 천장에 매달린 27대의 카메라만으로 운영된다.
공동 창업자인 마이클 서스워스는 "카메라가 사람들의 행동을 일일이 추적하고 딥러닝(심층 학습)으로 분석해 어떤 동작이 실제 물건을 사는 동작인지, 관심만 갖는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 어떤 제품을 구매했는지도 검증한다"며 "매장이 있는 장소나 상점 구조와 상관없이 천장에 카메라만 설치하는 것만으로 무인 상점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탠더드 코그니션은 지금까지 1000만달러(약 113억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일본·미국의 대형 소매 체인 4곳과 상용화 계약을 마쳤다. 내년 초부터는 매월 무인 상점을 100개씩 개설할 계획이다. 뉴욕타임스는 "무인 상점 기술의 발달은 500만명에 이르는 미국 소매 점포 점원들의 일자리에 대한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전방위로 확산되는 自動化
로봇과 AI는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사람들의 일자리를 가져가고 있다. 이달 5일 미국 최대 유통기업 월마트는 "샌디에이고의 스타트업 브레인과 함께 내년 1월부터 월마트 매장에 360대의 자동 경비·청소 로봇을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마존의 AI 비서 알렉사와 구글의 구글홈은 미국 대형 호텔 체인 매리엇을 비롯한 여러 호텔에서 인간 호텔리어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운전자가 필요 없는 자율주행차는 운송 산업의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들 전망이다. 구글의 자율주행 자회사인 웨이모는 이달 초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운전자가 없는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를 상용화했다. 세계 최대 차량 공유업체 우버는 '자율비행 택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2025년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가 2025년 420억달러, 2035년에는 세계 자동차 판매량의 25%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로봇 벤처기업 베어로보틱스가 개발한 서빙 로봇 ‘페니’가 실리콘밸리의 한 피자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베어로보틱스
미국의 호경기와 최저임금 인상 운동은 자동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최근 실업률이 사실상 완전 고용 상태인 3%까지 떨어지면서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는 불만이 넘쳐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아마존·월마트 등 대형 업체들이 임금을 대폭 올리면서 중소 업체들은 극심한 구인난을 겪고 있다. 안정적이고 인건비 상승 우려가 없는 자동화로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LA타임스는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잠식하기 전에 저임금 노동자들의 재교육을 비롯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이는 국가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서빙 로봇 피자집 취업
"사람 종업원은 손님 접대에 더 집중할 수 있죠"
"로봇이 음식을 나르면 늦게 온 사람이 먼저 받을 걱정도 없고 주문대로 정확한 사람에게 가져다줘 식당에서 인적(人的) 오류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베어로보틱스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주목받는 로봇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으로 꼽힌다. 이 회사가 개발한 서빙 로봇 '페니'는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해 식당 안에서 스스로 알아서 길을 찾아 음식을 나르고 사람이나 장애물을 피한다. 현재 마운틴뷰의 피자 레스토랑을 비롯해 15대의 페니가 식당에서 가동되고 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 최근 선보인 배달 로봇 '딜리' 역시 이 회사가 개발했다.
인텔과 구글에서 엔지니어로 일했던 하정우〈사진〉 베어로보틱스 대표는 지난 18일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거나 치우는 것 같은 어렵고 귀찮은 일을 맡기기 위해 페니를 개발했다"며 "사람을 대체하기보다는 구인난에 시달리는 식당들의 운영을 효율화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했다. 베어로보틱스는 현재 식당에 사람 인건비의 절반 정도 가격에 페니를 빌려주고 있다. 원하는 식당이 갈수록 많아져 양산(量産) 시스템 구축도 계획 중이다.
하 대표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많은 양로원의 급식이나 주방과 식탁이 멀어 사람이 일하기 힘든 곳처럼 서빙 로봇의 시장성은 충분하다"며 "로봇 대신 사람 종업원은 식당 내 손님 접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돼 서비스의 품질도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실리콘밸리(미국)=박건형 특파원 defyi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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