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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산업 50+세대/논문

인도의 집단 성폭행 사건들과 지역적 특성의 연관성

by ∺∺§∺∺ 2021.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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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집단 성폭행 사건들과 지역적 특성의 연관성Association of Regional Sexual Assaults with Regional Traits in India

 

강위달, 이거룡
선문대학교 대학원 통합의학과
Wee-Dal Kang(weedalriver@naver.com), Geo-Lyoung Lee(leeashram@hanmail.net)

 

요약

근래 인도에서의 잔혹한 집단 성폭행 사건에 대한 보도를 자주 접하고 있다. 인도에서 가장 부각된 집단 성폭행 사건은 2012년 의대생인 조티 싱을 버스에서 6명이 집단 성폭행한 후 성기와 장기를 손상해 사망하게 만든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성폭행에 대해 사형까지도 포함한 강력한 처벌 법안이 발의되고 통과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성폭행은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성폭행 사건 발생지역을 중심으로 지역적 특성과의 연관성을 살펴본 결과, 언론에 보도된 집단 성폭행 사례의 대부분이 인도 중북부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 으며, 이것은 지역적으로 힌두 강세지역과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렇다면 그 원인은 여성 경시가 심각한 힌두 근본주의가 그 원인이라고 결론 내릴 수 밖에 없다. 힌두 근본주의자들은 강한 복고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여성에 관한 전통적 가치를 부활시키려 한다. 인도 사회에서 여성은 아직도 종속적인 피해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집권당과 정치지도자들의 힌두 근본주의 노선 추구는 인도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인권을 개선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중심어 :∣집단 성폭행∣조티 싱∣힌두이즘∣여성의 사회적 지위∣카스트 제도∣힌두 근본주의 부활∣

 

Abstract

Recently, reports of cruel group sexual assault in India have been frequently reported. The most prominent group sexual assault incident in India was a medical student, Joti Singh case, that six men raped her and damaged her genitals and organs on a bus and caused her death in 2012. This incident led to the launch and passage of a strong punishment bill including death penalty for sexual assault. But since then, sexual assault is still on the rise.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relations with regional characteristics centering on the areas where sexual assaults occurred, it was found that most of the cases of group sexual assault reported in the media occurred in the mid-north of India, and this was consistent with the region of the Hindu stressed region. If so, it can only be concluded that Hindu fundamentalism, in which female neglect is severe, is the cause. Hindu fundamentalists try to revive the traditional values of women with a strong retroism tendency. In Indian society, women are still at risk of collateral damage. The pursuit of Hindu fundamentalism by the ruling party and political leaders will require much more time to improve the women's social status and human rights.

■ keyword :∣Gang Rape∣Jyoti Singh∣Hinduism∣Women's Social Status∣Caste System∣Hindu Fundamentalism∣


I. 서 론

 

인도는 인류의 4대 문명 중 하나인 인더스문명의 발상지이다. 인도는 성자의 나라, 금욕과 은둔의 나라, 영적인 나라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오천 년 전의 인도 고대 경전인 『하타요가프라디피카』, 『시바상히타』, 『게 란다상히타』 등에서도 성(性)은 성(聖)스러운 것으로 영적 완성과 해탈 등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인도인들은 성(性)을 종교적인 차원에서 신성하게 여겼으며, 인간이 창조해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예술이라고 믿었다[1]. 종교사에서도 성(性)에 대한 긍정적 태도로서 성(性)은 종교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해주는 신성한 기능을 행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2]. 부부의 성(性)생활 에서도 오늘날에는 교묘하게 뒤틀린 성교 체위의 지침서로 널리 알려진 『카마수트라』는 산스크리스트어로 ‘성적(性的) 쾌락의 안내’ 인데 기본 교리로 행복한 결혼을 위해 양 배우자 모두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의 쾌락에 숙달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3]을 가르치고 있다. 인도인의 성 윤리는 사회 제도적으로 엄격하고 남녀가 유별하다. 힌두 자체 교육에서도 남성에게는 여성에게 관심을 두지 않도록 훈련하고, 여성이 울리는 발찌의 은방울 소리를 듣고 자리를 피하도록 했다. 남녀의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호간에 관심을 두는 것은 비슷하지만 인도인은 오랜 훈련과 사회관습으로 남녀유별(男女有別)에 철저하다. 힌두교는 성의 문제를 다루는데 지극히 보수적이며 한국의 유림과 흡사한 면모를 보인다. 인간에게 성은 단순한 종족 번식의 수단을 넘어서 모든 도덕성의 바탕을 이루는 문제이기도 하다 [4]. 그러나 근래 인도에서 잔혹하고 야만적인 집단 성폭행에 대한 언론 보도를 자주 접하고 있다. 인도에서 가장 부각된 집단 성폭행 사건은 2012년 의대생인 조티 싱을 버스에서 6명이 집단 성폭행한 후 성기와 항문에 녹슨 쇠말뚝을 넣고 휘저어 장기를 손상하고 손으로 대부분의 내장을 끄집어내 훼손시켜 사망하게 만든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15년 12월 성폭행에 대해 사형까지도 포함된 강력한 처벌 법안이 발의되고 통과 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충격적인 집단 성폭행 사건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성 추문에 휘말리면 명예 살인(Honor killing)을 할정도로 보수적인 인도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우타르 프 라데시 주에서는 뱀에 물려 병원에 입원 중인 4세 여아를 병원 직원을 포함한 5명이 집단 성폭행을 했을 뿐만 아니라 두 아이의 엄마가 버스에서 3세 딸이 보는 가운데 집단 성폭행을 당했으며 태어난지 14일 된 아들은 바닥으로 내던져져 그 자리에서 숨지는 일도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달리던 차를 세우고 14세 딸과 30대 어머니를 남성 15명이 성폭행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또 한, 동부 자르칸드 주 차트라 지구에서는 16세 소녀를 남성 16명이 집단 성폭행하고 산 채로 방화 살인을 한 경우도 있었다. 이 글은 인도와 인도의 사회, 문화를 폄하하거나 비난하기에 앞서 7개월 여아부터 어린 소녀들, 엄마와 10 대 딸 모녀를 동시에 윤간하는 등 무분별하고 무자비한 집단 성폭행 행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와 함께 인도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와 여성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Ⅱ. 인도 집단 성폭행 사건들의 사례와 발생 지역

[표 1]에 나타난 집단 성폭행 발생지역은 뉴델리 5건, 마디아프라데시 2건, 자르칸드 3건, 하리아나 2건, 우타르프라데시 5건, 콜카타 1건, 구자라트 1건, 마날리 1건, 잠무 카쉬미르 1건, 타밀나두 1건, 라자스탄 1건, 비하르 1건으로 분류되었으며, 위의 사례들은 선택적이 아닌 언론으로 보도된 사건들의 표집으로 작성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 발생지역이 힌두 강세지역과 거의 일치하고 있음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Ⅲ. 힌두이즘

 

힌두이즘(Hinduism)이라는 용어는 1787년 동인도 회사의 상인인 복음주의 기독교인 찰스 그랜트 (Charles Grant)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용어는 힌두 종교와 힌두 교리를 의미했으며 19세기 들어 인도의 토착 종교를 의미하는 일반적인 명칭이 되었다. 이처럼 힌두이즘은 영국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이지만 힌두라는 용어의 어원은 그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515년 페르샤의 다리우스 대 왕이 인더스 강이 흐르는 인더스 계곡을 합병하면서 산 스크리트어로 신두(Sindu)였던 이 지역이 힌두(Hindu) 가 되고 16세기 무슬림들이 북인도지역을 점령하면서 국가를 힌두스탄(Hindustan)으로, 그 민족을 힌두라고 불렀다. 힌두는 처음에는 지역을 의미하는 용어였지만 후에 점차 그 지역의 사람들로 확장되었고 18세기 영국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힌두이즘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인도 전역의 종교와 사상뿐만 아니라 문화까지 아우르는 개념이 되었다. 힌두의 가치체계는 복합적이다. 이상적인 사람은 점진적으로 현실적인 삶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성공이 아니라 해탈을 생각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므로 포기는 인간의 이상적인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5]. 그러다보니 세속을 포기하는 금욕주의는 보편적으로 존경받는 유형이며 개인의 자유에 대한 포기가 광범위하게 실행된 면들이 많다. 특히 카스트제도는 힌두이즘의 다른 면들보다 더욱 큰 논란을 일으켰다. 힌두이즘은 많은 문화의 산물이다. 인도의 사회적 관습, 축제들, 종교의식 등은 주로 여성들에 의해 실행되었으며 보통 가족 또는 공동체의 행복을 위하는 경향이 강하다. 힌두들은 여성은 본질적으로 사악하며, 정신적으로는 오염돼 있다고 본다. 『리그베다』에서는 “여성은 정신 훈련이 돼있지 않고 지성에는 무게가 없다”라고 하였다. 여성은 “감정과 정념에 자신을 통제할 능력이 없으며 제사에는 부정하다”라는 것이 고대 경전의 가르침이다. 『마누법전』에서는 여성의 존재를 더욱 폄하하여 여성을 처형하는 것을 가볍게 여기는 내용도 나온다. 그 뿐만 아니라 여성의 베다 독경을 금지하거나 제사에 대한 권한을 허락하지 않는다. 또 여성의 불완전성 때문에 여성을 독립적으로 두어서는 안된다는 계율도 있으며 철저히 남성에게 의존해야 한다[6]. 힌두교인들의 믿음에 따르면 종교 의례에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정, 부정 구분 관념으로 볼 때, 남성은 순수하고 또 신체적으로 강하고 정서적으로 성숙하지만 여성은 오염되기 쉽고 신체적으로 약하며 성적으로 위험하고 의지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7]. 인도 여성은 결혼 전에 아버지가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진다. 아버지가 없다면 남자 형제인 오빠나 남동생이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진다. 그러므로 남동생들조차 누나는 자기들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딸이 결혼을 못하는 것은 그 가문의 수치로 여긴다. 그래서 아버지나 오빠, 남 동생은 딸이나 누이를 반드시 결혼시켜야만 하고, 결혼한 후에는 남편이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 만혼은 용납되어도 결혼 안 하는 것은 용납될 수가 없다. 인도인에게 결혼이 의미하는 것은 가문의 명예요, 집안의 대사요, 사회적으로는 신분과시이기때문이다. 이러므로 결혼 문제를 놓고 결혼 당사자들은 정작 발언권도 없고 집안 어른들의 뒷전으로 밀리는 형편이다[8]. 인도 여대생들은 학교에서는 남학생들에게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청바지도 많이 입는 현대 여성이다. 남학생보다 학업이 나 능력 면에서 우수한 여학생들이 많지만 결혼을 통해 사리를 입게 되면, 절대 남편을 앞서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못한다. 그것이 인도 여성의 결혼이다. 적어도 사내아이를 낳을 때까지는 상하관계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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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힌두의 여성에 대한 인식

 

19세기와 20세기 초 인도에서의 여성 교육은 남편을 위한 좋은 반려자를 만들려는 이데올로기로부터 시작 되었다. 확실히 교육의 목적이 여성을 남성과 평등하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9]라고 하고 있다. 독립 이후 인도에서의 여성에 대한 사회적 지위와 최근 여성에 대한 지위 변화는 1990년대의 힌두 근본주의 부활이라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음을 마주하게 된다. 구자라트, 라자스탄, 하리아나 등 주로 북부 인도일수록 힌두 원리주의자들이 많으며[10]힌두 근본주의자들은 강한 복고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여성에 관한 전통적 가치를 부활시키려고 한다. 여성 지위를 향상하려는 많은 정책과 조치, 여성들 자신의 자각과 투쟁, 이에 따른 새로운 여성상의 등장 등의 여성의식과 지위의 변화는 이에 대한 저항 세력을 결집하는 자극제가 되어 인도에서 우익성향의 힌두 근본주의가 부활하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가족 내에서 더욱 독립적인 경제권을 가지게 된 여성에 대해 친족 남성들의 불안감은 가부장적 제도와 권위적 구조를 재확인하고자 하는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근대 이후에 등장하여 특히 1990년대를 전후해 급 부상한 힌두 근본주의는 오늘날 인도 여성과 그들의 삶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7]. EBS 다큐멘터리 <인도의 얼굴>을 연출한 채수영 PD 는 NGO 단체 사람을 인터뷰한 일이 있는데. 그의 말은 “인도 여성들의 좋은 점은 여자들을 위한 법들이 있다는 것이며, 나쁜 점은 그런 법들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조혼금지법, 지참금 금지법, 과부 연금 제도도 있긴 있는데 시행이 안 된다.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조혼하고, 모든 결혼식은 신부 지참금을 다 받는다."라고 말했다. 브라만교의 카스트 제도상에서 여성 들은 설사 자신들이 상위 브라만 계급 출신이어도 천민 수드라와 같은 정도의 지위를 부여받았다[11]. 이러한역사적 전통적 사실에 근거하여 여성의 지위는 종속적이고 하녀와 같다. 그래서 여성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 다.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 여성은 집안을 대표할 수 없다. 부인의 영향력이 커도 부인이 남편을 앞서서 나서는 일은 없다. 순종적인 아내가 이로운 동반자라면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나 과부 또는 관능적인 여성은 파괴적이고 위험한 존재이다. 또한 아이를 출산하고 양육하는 어머니는 자애로운 존재이지만 자유성과 독립성을 지닌 여성은 강력하면서도 위험한 존재로 인식된다 [7]는 것이다. 인도 사회의 만연한 성범죄가 문화적인 문제가 아닌 남성이 여성보다 높은 지위를 가지면서 생기는 사회적 인 문제로 생각되며, 수많은 성폭행 문제들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보기 때문에 대등한 관계보다는 남성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하는 성적(性的) 대상으로만 인식해온 자세가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바탕에는 힌두 근본주의의 영향이 가장 커 보인다. 그런 인식은 2002년 의대생 조티 싱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인 무케시와 그들의 변호사 M.L.샤르마와 A.P.싱의 언행에 잘 나타나고 있다. 범인 무케시는 BBC다큐 ‘인도의 딸: 그날 버스에서 있었던 일’ 인터뷰에서 “여자는 성폭행에 저항하지 말고 몸을 허락해야 하며 이 사건은 그 커플에게 교훈을 주려고 일어난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통적인 종교문화와 관습을 고수하는 가족법 체계가 지배적인 인도의 현실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 및 사회적 지위의 변화와 제도 개선은 기대하기 매우 힘들다[12].

 

 

Ⅴ. 힌두 근본주의 세력의 부상과 부활

 

여성 억압관습이 되살아나고 있는 현상은 힌두 근본주의 세력의 정치적 부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미 법으로 금지된 여러 가지 여성 억압관습을 전통이라는 미명 아래 되돌릴 것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사망한 남편과 함께 과부를 화장하는 사티(Sati)를 힌두교의 순수한 전통으로 조작하고 신격화시키기도 했다[13]. 인도에서 힌두 근본주의가 부활하게 된 근원적인 배경은 근대 이후에 발생한 사회, 정치적인 변화에 따라 정치 세력들에 의한 종교의 정치화에서 찾을 수 있다. 19세기 영국 제국주의 세력의 인도 진출로 인해 인도는 서구 문물과 만나게 되고 정치, 사회적인 변화 과정을 밟게 된다. 이러한 변화에 직면하여 당시 인도에서는 서구의 문물과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반응과 힌두의 동질성과 전통적 가치를 고수하려는 보수적이고 복고주의적 반응이 대치하게 되었다[14].

힌두 근본주의 세력은 1980년대 중반부터 재등장하 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정당이 인도 국민당(BJP, Bharatiya Janata Party)이다. BJP는 1984년 총선에 서 연방하원 전체 의석 543석 중 단 2석만을 획득했다. 이에 지지 기반을 본격적으로 넓히기 위하여 국민자원 봉사단(RSS)과 세계힌두협의회(VHP)와 같은 힌두 극 우 종교 운동단체들과 연대하여 힌두 민족주의에 호소 하기 시작했다. 이 결과 1989년 총선거에서 91석을 확 보했으며 이어 1991년에는 119석을 확보하여 연방하 원에 당당히 제2당으로 입성하고[15] 1996년 161석으 로 제1당이 된 뒤 현재까지 인도 중앙정부를 장악하여 정치, 사회 분야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현 인도 총리는 구자 라트 주 여타후진계급 OBC(Other Backward Class)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유년 시절부터 힌두 근본주의 단 체인 국민자원봉사단(RSS)의 회원으로 활동했고, 1995 년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하면서 힌두 근본주의 노선을 추구해왔다[16].

결혼은 힌두 사회에서 남녀를 불문하고 절대로 개인 의 선택 사항이 아니다. 가족과 소속된 계층 또는 카스트에 대한 의무다. 그래서 인도의 혼인법에 따르면 힌두의 결혼식은 동의가 필요없는 종교적 헌신 (Sacrament)으로 분류된다. 일종의 예배 같은 것이다. 그래서 동의하는 절차가 없다. 동의와 관계없이 둘은 부부다. 요즈음의 인도 젊은이들은 글로벌한 사고 속에서 전통적인 관습을 무릅쓰고 결혼에 관련해서 가문보다는 나의 선택을 중요시하고 있어 사회적 문제들과의 마찰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결혼은 자신과 배우자와의 삶이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과 책임임을 내심 강조하고 있으며 이런 입장은 고학력의 여성들에게서 더 잘 나타나고 있다. 1990년대 인도의 미디어 혁명은 IT산업의 발달을 기반으로 이룩된 것으로 그 결과 인도 사회에서 주로 젊은 층인 IT산업 종사자들을 중심으로 소비주의를 확산시켰고, 방송 미디어를 통한 외래 문물의 무차별적 유입으로 인도의 전통적 가치가 손상되는 양상을 보임에 따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힌두주의가 발흥하는 중요한 변인이 되었다 [17]한다. 1987~88년 사이에 인도 국영 TV가 78주 동안 매주 일요 연속극으로 방영한 『라마야나』는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힌두 대중들의 반응은 뜨겁고 성스러웠으며, 특히 북부 인도에서는 『라마야나』를 시청하는 것이 종교 행위와 같을 정도였다. 그들은 TV 모니터에 나타나는 람에게 직접 신을 대하는 것과 같은 반응을 나타내서 어떤 사람들은 TV시청 전에 목욕을 했고 어떤 사람들은 TV 세트를 사원처럼 꽃으로 장식하기도 했다. 힌두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대중들의 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는데 전통적인 종교 상징을 계속 사용하면서 새로운 의례와 신화의 새로운 본을 도입하는 전략을 택했는데 드라마 『라마야나』는 바로 그러한 역할을 위해 이용되었다[14]. 『라마야나』는 종파를 초월해 모든 계층의 인도인들, 특히 북부 인도인들의 삶과 문화에 지속적이고 폭넓은 영향을 미쳤다[18].

인도인의 종교와 관계된 인생 예식은 출생, 결혼, 장례 세 가지이다. 이 중에 결혼은 두 번째 단계인 그리하 스티야에 속한다. ‘그리’는 ‘집’이고 ‘하스티야’는 ‘행사’, ‘책임’으로 결혼은 가정을 돌보고 책임을 진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결혼 지참금은 힌디어로 ‘다헤즈’ 라고 하는데 이렇게 신랑 측이 신부 측으로부터 지참금을 받는 근거는 『마누법전』에 있다. 이 고전에 따르면 결혼은 여덟 가지의 형태가 있다. 그중에 딸을 시집보내면서 신랑 측으로부터 그 대가를 받는 결혼은 비속한 결혼이다. 딸을 팔아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 뼈대 있는 가문에서는 시행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반대로 딸을 시집 보내면서는 딸의 부모가 신랑 측에 선물로 많은 물품을 함께 보내는 결혼은 고귀한 결혼 양식으로 여겼다. 이러한 전통이 세월이 흐르면서 세태가 바뀌어 신랑 측에서 결혼 지참금을 받는 것을 당연시하게 되었다는 것이 다. 그 여파로 지참금을 둘러싼 신부살해와 자살들이 생기는 등 지참금이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딸이 태어나면 집안의 가장 큰 근심거리란 말이 있다. 이런 문제는 딸이 태어나면 길거리에 버리는 등, 영여아살해(Female infanticide)관행과 현대 의학 기술을 이용한 성감별로 여태아를 유산시키는 살해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구자라트 주 의 2014년 통계로는 남자 1천 명당 여자가 854명으로 최악의 성비 불균형을 기록했다.

전통적으로 인도 사회에서 강력한 가부장제는 유아 혼, 영여아살해, 빠르다(여성이 시가 쪽 남성들 특히 손 위 남성들과 내외를 해야 하는 관습), 신부지참금, 데바 다시(순결한 14세 이하의 처녀를 종으로 바치는 것으로 사원에 들어가 신과 결혼식을 올리지만, 최종적으로 사원 매춘부로 전락하게 된다), 과부억압, 일부다처제, 여성 교육 금지 등 여성의 삶을 극도로 억압하는 여러 관습을 발달시켜왔다[14]. 인도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은 카스트 제도상에서 상위 브라만 계급의 여성조차도 천민인 수드라와 같이 취급된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요약될 수 있겠다. 인도 여성들도 원래는 성적으로 상당히 개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누법전(3*45-47)에 규정된 리투가마나(Ritu-gamana)는 월경(Ritu)이 시작되고 5〜 16일까지는 임신이 가능한 시기로서, 혈통의 보존을 위해 이 기간만큼은 부부끼리 성교할 것을 규정해 놓은 것이다[19]. 추정해보자면 결국 힌두이즘의 여성에 대한 인식과 억압은 이런 역사적 바탕에서 생겨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역시 고려말에 왕비가 중의 아들을 낳았다고 할 만큼 여성들이 성적으로 문란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고 있다. 그 결과 조선시대에는 여성에 대한 규제와 억압이 상당히 심했는데 이 역시 인도의 예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2019년 새해 벽두부터 인도에서는 여성차별 철폐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새해 첫날인 지난 1월 1일 인도 남부 케랄라 주에서 사원 출입에 대한 양성평등을 요구하며 남북으로 620km에 걸쳐 약 500만 명의 여성들이 어깨를 맞대고 도로에 늘어서 인간 띠 시위에 참여했다. 이들은 케 랄라 주의 유명 힌두사원 출입과 관련해 양성평등이 실현돼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지난해 10월 인도 대법원은 10세부터 50세까지 여성의 출입을 금지한 사바리말라 사원의 제한을 풀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힌두사원은 가임기 여성들에 대해 '깨끗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출입을 막아왔다. 힌두교 생육의 신인 아야파를 모신 사바 리말라 사원은 해마다 2천만 명이 넘는 순례객들이 찾는 곳이다. 이번 시위는 좌파 성향인 주 정부의 지지로 열렸는데, 연방정부를 장악한 힌두 민족주의 성향의 인도 국민당은 이 힌두사원에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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Ⅵ. 결 론

 

인도에서 여성은 강력한 여신으로 나타날 때도 있고 하녀로 나타날 때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빈부와 관계없이 인도 여성의 위상은 산업화 도시화와 더불어 여성의 입장이 강화되고 다양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 고 전체적으로 인도 사회에서 여성은 아직도 약하고, 의존적이고, 종속적으로 피해를 볼 위험에 노출된 것으 로 보인다. 성폭행 범죄가 많은 또 다른 이유로는 사회적으로 가 정 폭력에 관대한 문화도 성폭행이 많은 이유로 꼽히고, 여성 경찰이 드물고 경찰에 대한 불신으로 성폭행을 당 한 여성들이 신고를 꺼리는 점, 성폭행 사건 기소율이 너무 낮으며 판사 부족으로 인해 사법 절차 진행 속도가 무척이나 느린 점, 또 성폭행이 발생하면 가해자를 탓하 기보다는 피해자의 옷 노출에 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으 며, 갈등을 피하고자 피해자를 비난하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성폭행이 외부에 알려지는 사례는 실제 사 건의 10%도 채 안 된다고 하는데, 성폭행을 당한 피해 자는 더럽고 오염 되었다고 치부되어 결혼이 힘들어지 기 때문에 피해를 보고도 함구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경찰에 알리는 것은 더 드문 일이다[20].

현재 인도의 대학생 사회에서는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고 수년간씩 연애를 하지만 결혼까지 하는 경우는 드 물다. 그 이유는 연애는 당사자 간의 문제이지만 결혼 은 집안의 문제로 장차 시댁 식구가 동의해야 하는 문 제다. 따라서 결혼은 당사자 간의 문제를 떠나 외부적 요인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마음에 들건 안 들건 결혼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렇게 연애 따로 결혼 따로 의 분위기는 꼭 대학교 안에서 만나는 대학생들의 경우 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변화와 여성의 지위 변화에 대해 전통적 인 가부장적 사고와 권위적 구조의 상실감과 박탈감은 집단 성폭행으로 나타나고 그런 집단 성폭행은 성욕과 성 충동 이전에 힌두공동체 정체성의 위협에 대한 근본 주의로서의 적개심과 여성들의 변화를 굴복시키기 위 한 응징수단으로서의 심리적 상태가 내재해 있는 것으 로 보인다. 인도에서의 집단 성폭행 이유로 도시에서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는 데에 대한 남성들의 반감, 시골 지역에서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카스트 제도를 꼽기 도 한다. 또는 인도의 시골 지역에는 남아 1,000명당 여아 비율이 7∼800명밖에 안되는 지역이 많은데 그만 큼 많은 여아가 낙태되고 있다[21]는 것이며, 이러한 남 아선호로 인한 남녀 성비 불균형으로 여성이 부족하여, 우타르프라데시 등 인도 북부의 낙후된 지역의 가난하 고 소외된 남성들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 으로 강간과 살해라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도 한 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본 연구의 사례들에서 보자면 경찰관, 관공서 직원, 병 원, 호텔 등의 직장인이 다수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국가에서 특정 지역의 집단 성폭행 사건이 월 등히 높게 나타난다면, 지역적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본 연구의 결과로는 그 지역들이 여성에 대한 인권 경시가 심각한 힌두 근본주의 강세지역이라는 결 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도 국가 차원의 집 단 성폭행 사건에 대한 통계나 그 외의 자료에 접근하 기가 쉽지 않아 연구의 제한점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극히 일부 사건 외에는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 것과 성 폭행 사건 자체를 감추려는 가정적, 사회적, 지역적 특 성 때문으로 생각된다.

인도 힌두사회의 가부장적인 특성으로 피해 여성들 의 침묵과 지역공동체 차원의 은폐로 인해 공개된 성폭 행 사건보다 실제 사건이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되지 만, 인도 현행법상 강간 피해자가 사망하더라도 밝히지 않는 법체제 때문에 정확한 통계에 접근이 쉽지 못한 점이 연구의 한계점이라 하겠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현재의 집권당과 정치지 도자들의 힌두 근본주의 노선 추구는 인도 여성의 사회 적 지위를 개선하는 데에는 큰 장애가 될 것이며 여성의 인권향상에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이 시간(2019.12.08)에도 여러 매체에서 인도 우타르프라데시 주에서 성폭행 피해자인 20대 여성이 증언을 위해 법원으로 가던 중 가해자 2명과 그의 친구 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불에 타 숨지고 며칠 후에는 여성 수의사, 6살 초등학생도 비슷한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 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민심이 폭발하고 야당 의 라훌간디(前 인도국민회의 총재)는 ‘인도가 세계의 성폭행 수도로 알려지게 됐다’며 정부의 침묵을 비판했 다. 정부의 이런 침묵은 힌두 강세 지역인 구자라트 주 출신으로서 힌두 근본주의자들의 강력한 지원으로 탄생 한 現 모디정부의 한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인도 사회에 팽배해 있는 여성에 대한 편견 과 차별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성범죄의 예방과 근절을 위해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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